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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뷰
포칼 클리어
스카치 위스키를 통해 고찰해보는 헤드폰의 소리

2017년 11월 11일


하이파이 오디오를 운용하면서 그와 필적하는 수준의 헤드파이 시스템도 갖춘 여러분이라면, 포칼(Focal)의 새로운 헤드폰 출시에 많은 기대를 갖고 계실 것입니다. 하이엔드급 라우드 스피커를 제작할 뿐만 아니라 스피커에 들어가는 드라이버 유닛도 직접 개발하는 프랑스 회사에서 유토피아(Utopia)와 일리어(Elear)를 내놓았을 때 두 제품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기존의 헤드폰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스피커 같은 느낌’을 지니되, 일리어는 비교적 부담이 적은 가격과 편안하고 다양한 매치업이 가능한 소리로 사람들을 헤드폰 세계에 끌어들이고, 유토피아는 그 세계의 끝에서 기다리는 최종 보스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두 헤드폰이 단순히 등급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충분히 많더라도 일리어의 듣기 편안한 소리가 좋다면 일리어를 사는 것이고, 다음 달 월급이 위태로워지더라도 어떻게든 해상도와 공간감의 끝판왕을 맞이하고 싶다면 유토피아를 지르는 것입니다. 일리어와 유토피아의 사운드 캐릭터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듣는 이의 취향으로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포칼의 유토피아와 일리어 사이에 위치하는 새로운 제품 ‘클리어(Clear)’는 일리어보다 성능(해상도, 응답 속도 등의 기준에서)을 향상시키고 사운드 캐릭터에서도 더욱 ‘Clean & Sharp’를 지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제가 듣기에는 그러합니다. 또, 제품명이 일반적인 형용사이므로 앞으로는 ‘포칼 클리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는 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드폰 리뷰하는 거 아니었소?!)

1) 혼자 소량을 마시고 약간 취할 때 멈춘다.

2) 약간 취했을 때 음악이 더욱 감성적으로 들려서 좋다.

3) 취기가 사라지고 나면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므로 소리를 더 명료하게 들을 수 있다.

물론,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이 건강과 생활에 가장 좋겠으나 저는 위와 같은 개념으로 컨트롤을 하면서 마치 음향 액세서리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목적에 특히 잘 맞는 술이 스카치 위스키라고 봅니다. 저는 두 세 잔의 위스키를 원액으로 마시면서 음악 듣기를 좋아합니다. 온더락이 잘 어울린다고 평가 받는 종류의 스카치 위스키도 굳이 원액으로 마십니다. 최대한 순수한 향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또한, 천천히 음미하되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딱 소리가 듣기 좋아질 정도까지만 마십니다. 약한 취기가 사라진 후에는 머리가 맑아져서 음악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원음을 순수한 물이라고 한다면 포칼 클리어는 고품질의 스카치 위스키와도 같습니다. 처음 청취해보면 맑고 깨끗한 소리의 원래 속성을 유지하면서 특유의 짜릿하고 화사한 맛을 선사합니다. 마치 위스키의 첫 잔을 음미할 때의 감각입니다. 그 후 클리어의 소리를 더 많이 들어 보면, 드라이버의 성능이 매우 높아서 정밀한 소리 분석기의 역할도 멋지게 수행합니다. 이것은 알콜이 사라진 후 머리가 맑게 깨어나서 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들리는 경험과도 비슷합니다.

만약 포칼의 헤드폰을 술에 비유한다면 일리어는 포근하고 깊은 향을 지닌 꼬냑인 듯 합니다. 클리어는 12~18년산 스카치 위스키라고 하겠습니다. 대단히 깔끔한 맛의 닛카(Nikka) 싱글 몰트 위스키도 살짝 떠오릅니다. 그리고 유토피아는... 제가 아직 맛보지 못한 최고의 위스키라고 해야겠군요. 이 글의 후반부에서 설명하겠지만 포칼 일리어, 클리어, 유토피아를 동일한 시스템에 연결해서 비교 청취를 해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헤드폰과 액세서리가 모두 세련된 디자인

포칼 클리어는 포칼 헤드폰의 새로운 형제이면서 동시에 포칼의 유저 포럼 청취가 반영된 신제품이기도 합니다. 유저들이 일리어와 유토피아를 다루면서 불편한 점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봤고, 그 결과 포칼 클리어에는 새로운 캐링 케이스와 케이블이 추가되었습니다.

사진으로 찍지는 않았으나 포칼 클리어는 패키지 박스가 많이 작아졌습니다. 박스를 열면 헤드폰이 멋진 캐링 케이스에 담겨서 나오는데요. 250 x 240 x 120mm 사이즈의 하드 케이스입니다. 일리어, 클리어, 유토피아가 동일한 크기라서 이 케이스에 모두 호환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판매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리어, 유토피아 오너 여러분도 클리어의 캐링 케이스를 별도 구입해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전문적 장비의 케이스가 아니라 고급 디자인 소품 같은 케이스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패브릭 표면의 질감이 포근하고, 밝은 회색과 짙은 회색의 패턴 조합으로 매우 현대적이며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케이스 위 아래 부분에 절묘하게 교차 고정된 가죽 핸들도 멋진 디자인이 되겠습니다.




케이블은 총 3개가 제공됩니다. 4미터 길이의 묵직한 케이블에서 벗어나 직조물 피복의 가벼운 케이블로 교체된 것입니다. 3.5mm 커넥터의 1.2미터 케이블, 6.3mm 커넥터의 3미터 케이블, 4핀 XLR 커넥터의 3미터 케이블이 들어 있습니다. 저항이 낮은 24 AWG OFC 선재를 사용하며, 상당히 튼튼하고 뻣뻣해서 구부리기는 어렵지만 보기에 무척 예쁘고 무게가 가볍습니다. 헤드폰 자체의 무게 못지 않게 케이블의 무게도 유저의 머리와 목에 부담을 주므로, 좋은 선재를 쓰면서 피복을 경량화한 케이블은 환영할 만합니다. 또한 케이블의 커넥터와 Y-스플릿 부분은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클리어의 은색 깔맞춤이 됩니다.



헤드폰의 밸런스 커넥션에 대해서는 확실히 호불호가 있고 연결 가능한 헤드폰 앰프가 따로 필요하므로 현재 운용 중인 헤드폰 시스템의 구성에 맞추시길 권합니다. 분명한 점은, 헤드폰의 기본 구성품으로 밸런스 커넥션을 하는 4핀 XLR 커넥터 케이블이 있다는 것입니다. (뉴트릭 커넥터) 저의 경우는 젠하이저 HD800을 위해서 젠하이저의 CH800S 케이블을 별도 구입했는데 할인을 받았음에도 40만원이 넘었습니다. 포칼 클리어의 케이블 구성에는 개인적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




포칼 클리어의 본체 디자인을 살펴봅시다. 척 보기에는 일리어에서 색깔만 바꾼 듯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점이 다릅니다. 헤드밴드와 요크 디자인은 일리어와 동일한데 하우징 외부의 링 부분이 더욱 두껍고 화려합니다. 그리고 뽀송한 질감의 이어패드는 1mm 지름의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이것은 포칼 클리어의 소리 성향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데요. 포칼 측의 설명에서는 소리의 개방감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헤드폰의 이어패드 튜닝을 해본 분이라면 이어패드의 타공이 저음의 양을 줄이거나 타격을 짧게 끊어서 치는 성향으로 바꿈을 아실 겁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후반부의 소리 묘사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이 헤드폰의 은회색은 실제로 볼 때 훨씬 멋집니다. 그리고 유저가 머리에 썼을 때 더욱 멋지게 보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헤드밴드가 머리에 잘 밀착되고 헤드폰 하우징이 좌우로 튀어나오지 않는 형태라서 착용한 모습이 깔끔합니다. 거기에 색상까지 아주 밝은 실버가 됐으니... 착용하고 거울을 보면 순식간에 차가운 도시 남자의 비주얼이 됩니다.(라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집시다. 남성 여러분.) 또한 여성 오디오 애호가 여러분에게도 잘 맞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도시적인 느낌 뿐만 아니라 더욱 밝고 화려한 색상이기 때문입니다. 헤드폰 본체의 무게는 450g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착용해보면 대단히 편안해서 오랫동안 머리에 쓸 수 있습니다. 이어패드와 헤드밴드의 쿠션도 좋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이 무게를 골고루 분산시켜줍니다.



일리어, 클리어, 유토피아를 비교 청취해보자

포칼 클리어를 대여하기에 앞서, 수입사의 청음실에서 일리어, 유토피아와 비교 청취를 해보았습니다. 이 청음실은 매우 조용하며 소스 기기와 케이블 등의 조합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헤드폰 유저에게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두 시간 정도 오렌더 플레이어와 소니 헤드폰 앰프를 통해서 디지털 음악 파일을 짧게 감상하며 세 대의 헤드폰을 비교했는데... 생각보다 그 결론이 간단하고 명확해서 살짝 놀랐습니다.



클리어는 일리어보다 고음이 확실히 선명하며 저음 펀치가 단단합니다. 그리고 일리어보다 응답 속도가 빠릅니다. 이 점은 아마도 보이스 코일의 차이인 듯 한데, 일리어는 구리와 알루미늄 혼합이고 클리어는 순수 구리 소재입니다. (진동판 소재는 둘 다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의 혼합) 또한 단단해진 저음 특성은 클리어의 타공 처리된 이어패드 영향도 있는 모양입니다. 클리어의 저음은 일리어보다 호흡이 약간 빠르고 짧게 끊어서 치는 펀치를 지향합니다.


이 때 케이블은 클리어에 포함된 짧은 케이블을 사용했습니다. 일리어의 기본 케이블(아주 긴~!)이 고음 해상도를 조금 깎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리어에 클리어의 짧은 케이블을 끼웠더니 고음이 더 선명해져서 ‘역시 헤드폰에서도 케이블이 중요하구나~’라는 점을 다시 깨닫습니다. 참고로 포칼의 수입사는 두 대의 클리어 신품을 개봉한 후 며칠 동안 음악을 재생해서 번인(Burn-in)해두었다고 합니다. 제가 청음실에서 사용한 클리어와 빌려와서 리뷰용으로 사용한 클리어가 모두 충분히 에이징을 거친 상태입니다.

“클리어의 케이블은 일리어와 호환됩니다. LEMO 커넥터의 유토피아는 다른 커스텀 케이블이 필요하겠습니다.”

유토피아는 클리어, 일리어와는 별도로 두는 편이 낫겠습니다. 해상도가 많이 높으며 소리의 질감과 밀도에서도 큰 차이가 납니다. 클리어는 유토피아보다는 일리어의 사운드 캐릭터를 닮았다고 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클리어는 ‘일리어보다 고음이 선명하고 저음이 단단한 확장 버전’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클리어와 일리어는 둘 다 웅장한 저음과 플랫한 중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고음 특성과 응답 속도의 차이로 인해서 두 헤드폰의 음악 장르 선택이 나뉠 것입니다. 클리어는 이름 그대로 맑고 화사하며, 일리어는 더욱 포근하고 편안합니다.

이러한 느낌을 만약 주파수 응답 그래프로 그린다면 세 개 모두 ‘거의 플랫에서 고음만 올린 형태’로 하되,

일리어는 고음이 조금 낮고 저음이 조금 높음

클리어는 고음이 조금 높고 저음이 플랫함

유토피아는 고음이 폭넓게 더 높고 저음이 약간 높음

...이렇게 그릴 수 있겠습니다. 혹시 진짜로 그렸다가는 측정 데이터로 오해하실까봐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리어, 클리어, 유토피아가 각각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분의 취향에 맞춰서 선택하시라는 제안입니다.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유토피아를 고른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취향에 맞겠지만, 일리어와 클리어도 결코 만만치 않은 하이엔드급 오픈형 헤드폰이며 ‘포근한 일리어’와 ‘선명한 클리어’로 즐겨 듣는 음악 장르에 맞춰서 고를 수 있습니다.


*참고 : 이 모든 비교는 포칼 헤드폰 사이의 비교이며, 세 대 모두 타 회사들의 헤드폰과 비교하면 공통적으로 웅장한 저음과 샤프한 고음 성향이 있습니다. 저는 현재까지 포칼 헤드폰의 소리를 듣고 분석하면서 공통적으로 약간 밝은 음색과 높은 해상도,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저음을 경험해왔습니다. 현재 측정 기준의 플랫 사운드를 지향하지 않으며, 방 안에서 듣는 라우드 스피커의 소리를 헤드폰에서 시뮬레이션하도록 만들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외 : 포칼 스피릿 프로페셔널은 스튜디오 모니터 헤드폰이므로 저음이 조금 보강된 플랫 사운드를 지향합니다.)


SOUND


그러면 이제부터는 일리어와 유토피아를 제외하고, ‘새롭게 장만하는 200만원대 헤드폰’ 중 하나로 포칼 클리어의 소리를 짚어보겠습니다. 헤드폰 리뷰를 할 때마다 소리가 하도 마음에 들어서 직접 구입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꼭 있는데... 포칼 클리어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진공관 앰프용으로 일리어를 둔다면 클리어는 외장 DAC와 연결한 트랜지스터 앰프의 훌륭한 파트너가 됩니다. 또한 포칼 클리어는 휴대용 기기(고해상도 DAP, 휴대용 헤드폰 앰프 등)로도 쉽게 구동할 수 있습니다. 소리의 해상도 때문에 고품질의 거치형 기기를 선호하게 될 뿐, 출력 부분에서는 휴대용 기기를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임피던스가 55옴으로 일리어, 유토피아의 80옴보다 낮음)


*케이블의 선택에 대해

클리어의 청취에서 케이블은 3.5mm 플러그에 6.3mm 어댑터를 나사 방식으로 덧씌우는 짧은 케이블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클리어의 번인 과정에서 사용된 케이블이며, 긴 케이블과 비교 청취했을 때 아주 조~금 짧은 케이블의 소리가 낫게 들려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4핀 XLR 커넥터의 긴 케이블은 밸런스 커넥션을 쓰는 경우가 많지 않음을 감안하여 자주 듣지는 않았습니다. 클리어에 포함되는 4핀 XLR 케이블로 연결하면 소리 선이 굵어지고 저음이 더 강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힘차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출력이 증폭되는 밸런스 커넥션의 기본 속성입니다. 힘에서는 분명히 밸런스 커넥션이 유리하지만 포칼 클리어 특유의 섬세한 고음을 중시하겠다면 언밸런스 커넥션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여한 포칼 클리어는 수입사에서 며칠 동안 계속 음악을 틀어서 번인한 제품입니다. 첫 청취부터 극히 매끄러운 고.중음과 든든한 저음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가늘고 드라이한 성향의 음색으로 알려진 젠하이저 HDVD800에 연결했는데 시작부터 푹신하고 큰 덩어리의 저음이 느껴지는 경우는 참 오랜만입니다. 예상컨대 클리어 신품의 소리에서는 고음의 입자가 약간 거칠거나 저음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헤드폰을 꾸준히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에이징하는 쪽을 권장하지만, 클리어는 금속 진동판(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을 혼합)을 사용하니 시작부터 어느 정도 번인을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스마트폰, 고해상도 DAP와 잘 맞는 높은 감도

“소니 XZ1 컴팩트의 헤드폰잭 볼륨 50~60%로도 든든한 소리가 들립니다.”

풀 사이즈 헤드폰인데 감도가 상당히 높게 느껴집니다. 포칼 클리어의 감도 수치는 104dB로 일리어와 동일하지만 체감되는 감도는 클리어가 조금 더 높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스마트폰 헤드폰잭에 연결해서 볼륨을 50~60% 정도로 올려주면 일반적인 휴대용 헤드폰처럼 빵빵한 소리가 나옵니다. 짧은 케이블로 20~30만원대 DAP(예: 소니 NW-A45)에 연결해서 들어도 '오오~ 좋은데?'라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거치형 헤드폰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100~300만원대 DAP만 사용 중이라면 별도의 앰프 구입 없이 클리어 한 대만 갖춰도 하이파이 감상이 가능하겠습니다. 저의 경우는 캘릭스 M과 포칼 클리어로 192/24 PCM 파일과 DSD64/128 파일을 감상하곤 했는데요. 고 임피던스 모드로 듣는데 볼륨을 25% 이상 올릴 수가 없을 정도여서 클리어의 높은 감도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헤드폰의 진동판이 완전히 울리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추상적 방법 중 하나가 ‘소리가 얼마나 가깝게 들리는가’인데, 클리어는 휴대용 기기에 연결해도 아주 가깝게 들립니다.

*앰프 매치업 : 일리어는 진공관 앰프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지만, 클리어에게는 고품질의 외장 DAC와 연결된 TR 앰프를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진공관 앰프들 사이에서도 소리가 따뜻한 것과 빠르고 힘찬 것이 따로 존재하지만, 클리어의 정밀한 고음과 빠른 응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역시 TR 앰프가 좋겠습니다. 진공관과 트랜지스터의 차이를 떠나서 앰프의 소리 성향이 빠르고 단단할수록 클리어의 성격과 맞으리라 예상합니다.


*약간 밝고 선이 가늘며 해상도가 매우 높은 고음

포칼 클리어는 첫 감상부터 고.중음의 선이 가늘고 질감이 유난히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밸런스 커넥션으로 들어도 이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음은 약간 강조되어 있으나 이 또한 고막을 강하게 누르지 않습니다. 일리어보다 저음이 덜 번질 뿐, 클리어도 저음의 양은 많은 편입니다. 또한, 약간 밝은 색의 고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청각 자극이 없군요. 비단처럼 매끄러운 감촉의 고음입니다. 듣는 순간 고급스러운 단맛이 느껴지는데 그 단맛에 질리지 않습니다. 한 번 듣기 시작하면 헤드폰을 벗을 수가 없는, 매우 중독적인 소리라고 하겠습니다.

고음의 해상도 역시 매우 높습니다. 음악의 디테일을 더욱 쉽게 감지할 수 있도록 세팅되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소스 품질에 까다로운 편은 아닙니다. 아이폰 SE의 헤드폰잭에 연결해서 애플 뮤직을 들어도 마치 고해상도 감상을 하는 것처럼 소리를 ‘업그레이드 + 리마스터링’해주는 헤드폰입니다. 작은 스마트폰의 헤드폰잭에 포칼 클리어를 연결하고 음악을 들으며 집 안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기분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대형 헤드폰인데 각 잡고 앉아서 듣지 않아도 됩니다.

*고음과 속성을 공유하며 밀도가 높은 중음

중음은 플랫하며 고음 만큼이나 깨끗하고 결이 곱습니다. 대부분의 특성을 고음과 공유하는 중음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화사하다’, ‘깨끗하다’, ‘밀도가 높다’ 등의 고음에 대한 묘사가 모두 중음에도 통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중음에서 저음으로 전환되는 부분의 자연스러움입니다. 저음의 둥둥거림이 중음에 악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은 중음이 더욱 든든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소리의 밀도가 높게 느껴집니다. 응답 속도가 빠르며 잔향이 적게 남는 점도 특징입니다. 잔향이 절제되는 건조한 소리는 아니지만, 일리어보다는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점에서는 클리어가 유토피아와 비슷하군요. 흥미로운 점은 중음의 위치인데, 포칼 헤드폰은 방 안에서 듣는 경험을 추구하므로 중음이 앞으로 튀어나오거나 고막으로 근접하지는 않습니다. 클리어의 중음은 청취자와 가수의 거리가 1미터 정도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의 공간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베이스 포트가 있는 라우드 스피커 같은 저음 울림

저음이 웅장합니다. 포칼 클리어도 단면이 M자 모양인 진동판을 사용하는데 지름 40mm 중에서 25.5mm 영역이 돔(Dome)이고, 그 돔의 후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파이프 구조의 울림통도 있어서 베이스 포트가 있는 라우드 스피커처럼 동작합니다. 포칼 헤드폰들이 주파수 응답 측정을 하면 저음이 거의 플랫하게 나오지만 실제 청취에서는 웅장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음악을 듣노라면 귀의 아래쪽과 바깥쪽으로부터 초저음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콘트라베이스와 팀파니 파트가 나올 때마다 ‘둥~’하고 별도의 우퍼가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이처럼 저음이 크게 울려도 고.중음을 가리지 않아서 소리가 더욱 맑게 들리는 것입니다.

*머리 좌우가 뻥 뚫리는 개방감

양 옆으로 넓게 펼쳐지는 공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방감이 실로 훌륭합니다. 그라도(Grado) 헤드폰 이후 이렇게 머리 좌우가 뻥 뚫리는 느낌은 오랜만인데요. 디지털 프로세싱이 가능한 헤드폰 앰프 중에서 크로스피드 효과를 낼 수 있는 제품과 포칼 클리어를 연결한다면 라우드 스피커 느낌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점은 유토피아, 클리어, 일리어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대부분의 풀 사이즈 오픈형 헤드폰에 적용되는 사항이기도 하지만, 포칼 헤드폰에서 유난히 강화되는 면이 있습니다.


*먼지 한 톨 없는 크리스탈 구체 같은 사운드 이미지

소리의 이미지가 매우 뚜렷하게 형성됩니다. 눈을 감고 들을 때 밴드나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치가 보이는 듯한 경험인데, 그 이미지가 무척 깨끗하며 좌우 채널의 초점도 머리 속에서 정확하게 맺힙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형 헤드폰이 주는 즐거운 경험은 '소리의 구체' 형성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소리가 머리를 감싸는 느낌입니다. 클리어는 이 점이 특히 좋습니다. 청취자의 머리 속으로 소리의 구체가 형성되는데 이것은 중심부와 안쪽이 고음과 중음으로 구성되며 그 테두리를 저음이 감싸는 형태입니다. 이 구체의 크기가 클수록 공간이 넓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클리어는 사운드 이미지를 뚜렷한 초점으로 묘사하므로 구체가 클 뿐만 아니라 매우 투명하게 느껴집니다. 먼지 한 톨 없게 닦아놓은 크리스탈 볼(Crystal Ball)이라고 할까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투명한 물질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됩니다. 이 느낌이 대단히 만족스럽고... 자꾸만 다시 듣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올라운드 타입의 헤드폰, 고음의 밝고 예쁜 느낌이 음악 장르를 가린다

이 헤드폰은 제 기준으로 볼 때 밝은 음색에 대한 취향 차이만 있을 뿐, 소리의 품질과 감성 모두에서 단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음의 밝고 예쁜 느낌은 음악 장르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고음과 저음이 조금 강조되어서 플랫 사운드 헤드폰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포칼 클리어는 고.중.저음의 비중이 잘 맞춰진 올라운드 타입의 헤드폰에 가깝습니다. 즉, 어떤 장르든 즐겁게 들을 수 있는데 어떤 장르든 조금 더 화사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현란한 소리를 선호하는 바이올리스트의 연주, 예쁜 비음을 지닌 여성 보컬리스트의 노래에 특히 잘 맞습니다. 클래식 악곡은 로맨틱한 분위기의 곡에 잘 맞으며 일명 '끈적한 연주곡'일수록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 포칼 클리어는 멘델스존 또는 라흐마니노프의 최적화 헤드폰이라고 해도 될 듯) 마리아 칼라스의 ‘Bellini: Norma, Act 1. Casta Diva’를 들으며 배경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코러스에서 화악 솟아오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대중 음악 중에서는 발라드, R&B, 소울 쪽의 노래에서 격한 감정의 상승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헤드폰의 소리가 냉정하지 않으며, 중저음의 부드러운 고밀도와 고음의 섬세한 화사함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품 요약 : 산뜻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풀 사이즈 오픈형 헤드폰. 낮은 임피던스와 높은 감도로 스마트폰이나 고해상도 DAP의 헤드폰 출력에 연결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매우 높은 해상도와 높은 밀도, 빠른 응답 속도로 디지털 사운드 성향을 보여주며, 밝고 섬세한 고음과 웅장한 저음이 깨끗한 이미지로 전달된다. 넓은 공간감과 탁 트인 개방감으로 라우드 스피커 느낌도 충실하게 재현한다. 간단히 말하면 포칼 클리어는 일리어보다 업그레이드된 제품이며 유토피아는 여전히 최종 보스의 자리에 앉아 있다.

지민국(luric@buy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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