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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뷰
파이널 오디오 판도라 HOPE VI
하이브리드 이어폰 같은 고능률 헤드폰

2017년 03월 23일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의 추억

일본의 오디오 브랜드,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Final Audio Design)은 국내 첫 상륙이 썩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사운드의 특징으로 어필하지 않고 그냥 '세계에서 제일 비싼 이어폰'처럼 홍보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케팅 대행사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수년 간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의 이어폰 제품들이 어떻게든 국내 판매를 시도했으나 방대한 경쟁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 안정적으로 수입이 되고 있으며 사용하는 분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의 제품들이 '소문'이 아닌 '소리'로 오디오파일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도 이제는 이 회사의 제품들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이 제품들은 고성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라우드 스피커와도 같은 공간감, 개방감을 특유의 울림 효과로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접근법도 이어리시버 음악 감상의 하나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가격은... 직접 들어보시고 판단해야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FI-BA-SS와 헤븐 시리즈로 대변되는 BA 이어폰들의 특이한 사운드도 체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번쩍거리는 금속 헤드폰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의 판도라 HOPE 시리즈는 다이내믹 드라이버와 함께 밸런스드 아머처를 넣은 독특한 헤드폰입니다. 콩알 만한 이어폰에나 들어가는 밸런스드 아머처 유닛을 헤드폰에 넣다니? - 이 대목에서 코웃음을 치시는 것은 좋습니다만, 이후 사운드 감상평 부분을 읽어보고 다시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일단 제가 1주일간 들어본 바로는 결코 이상한 짓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더군요.



지금 사진으로 보고 계신 제품은 판도라 HOPE VI입니다. 스피커 후면 하우징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모델인데 이것을 ABS 하우징으로 바꾼 판도라 HOPE IV도 있습니다. 왜 하우징 소재 이야기를 먼저 하느냐면, 이 헤드폰에서 무게가 꽤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판도라 HOPE VI는 무겁습니다... 스펙의 무게는 480g이므로 600g이나 되는 Audeze LCD-2보다는 훨씬 가볍게 느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착용을 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헤드폰 무게에 민감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판도라 HOPE VI를 머리에 쓰고 있으면 아령 2개를 밴드로 엮은 후 머리에 올리고 아래쪽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대부분의 하중이 양 옆으로 몰리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헤드폰은 실내 전용이므로 소파에 머리를 기대거나 아예 침대에 누워서 듣는 것이 편합니다. 물론 목이 튼튼하시다면 저처럼 무게에 신경쓰실 일은 없겠지요.


착용감은 무척 좋은 편이었습니다. 가죽 이어패드의 감촉이 부드러우며 헤드밴드의 쿠션도 너무 두껍거나 얇지 않아서 정수리를 강하게 압박하는 일 없이 편안하게 올려집니다. 다만, 착용 후에 거울을 본다면 메탈 귀마개를 착용한 텔레토비나 요다 스승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이 헤드폰은 실내 전용입니다. 머리에 쓰고 밖에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디자인은 다들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평가하겠지만 저는 마음에 듭니다.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은 빼어난 메탈 가공을 셀링 포인트로 제시하고 있는데, 판도라 HOPE VI의 금속 표면 질감과 광택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크롬 광택으로 온통 번쩍거리는 화려한 디자인입니다. 케이블은 탈착식인데 플러그 부분이 모두 번쩍거리는 금속이군요. 헤드폰에 끼우는 케이블의 좌우 표시가 플러그가 아닌 Y-스플릿에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처음에는 케이블의 좌우 구별이 안 된다며 투덜거리다가 Y-스플릿을 보고 나서야 헛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탈착식 플러그는 90도로 돌려서 잠그는 방식이므로 회전에 의한 접촉 불량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겠습니다.




SOUND

Driver Unit : 50 mm Dynamic + Balanced Armature
Impedance : 8 ohms
Sensitivity : 105 dB
Cable Length : 1.5 m
Weight : 480 g


BA를 추가한 것은 공간감의 향상이 목적인가

판도라 HOPE 시리즈는 풀 사이즈 밀폐형 헤드폰으로, 50mm 다이내믹 드라이버와 1개의 밸런스드 아머처(BA) 유닛을 함께 구동하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저도 이 헤드폰의 소리를 직접 듣기 전까지 BA 유닛은 사람의 외이도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만 제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구경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소리와 BA 유닛의 소리가 혼합되는 것을 들어보니 이런 느낌이 들더군요.

고가의 하이브리드 타입 이어폰과 유사한 소리로 들립니다.

전혀 다른 종류의 트랜스듀서를 쓰면서도 음이 부조화를 만들지 않도록 잘 조절한 것입니다. 또한 BA 유닛을 추가한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상해보면 고음역을 보강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데, 고음역 보강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더욱 큰 목적은 '공간감의 형성'이라고 봅니다.


이 헤드폰은 이어패드를 쉽게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중앙에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진동판이 보이고, 그 옆에 작은 은색 철망 부분이 보이실 겁니다. 저 철망 속에 BA 유닛이 들어가 있습니다. 헤드폰을 착용하면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귓바퀴의 옆에 위치하며 BA 유닛은 귓바퀴의 앞에 자리잡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50mm 풀레인지 드라이버에서 고.중.저음이 다 나오는데 이 소리는 귀 옆에서 들려오며 BA 유닛이 내는 고음역 일부가 귀 앞쪽에서 들려오는 방식입니다. 즉, 청자의 귓바퀴 전체를 무대로 삼아서 물리적으로 소리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마치 라이브 음장 효과를 넣은 듯한 느낌이 있는데 왜곡감이 적도록 조절이 되어 있군요. 덕분에 어떤 음악을 들어도 일종의 현장감이 추가되면서 감상의 즐거움이 커졌습니다.

이어폰보다도 능률이 좋은 풀 사이즈 헤드폰

판도라 HOPE VI는 놀라울 정도로 고능률 헤드폰입니다. 아이팟 나노 7에 직접 연결한 상태에서 볼륨 30%로도 본연의 소리를 낼 수 있지요. 거대한 풀 사이즈 헤드폰이 카드보다 작은 MP3P에 연결된 채로 작은 볼륨에서 빵빵한 소리를 들려주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또한 모든 음역의 해상도가 높습니다. 수입 가격이 80만원 미만이라고 들었는데 돈 값은 한다고 봅니다. 제 입장에서는 거치형 헤드폰 시스템 없이 그냥 스마트폰이나 아이팟에 바로 연결해서 편리하게 고해상도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가진 iOS 기기에서는 보통 256kbps 규격의 M4A 파일을 재생하지만 이 헤드폰으로 들으면 무슨 WAV 파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명하고도 웅장한 소리가 되더군요. 겉모습만 풀 사이즈 헤드폰일 뿐, 판도라 HOPE VI는 어지간한 이어폰보다도 능률이 좋으며 높은 해상도를 제공하는 이어리시버라고 하겠습니다.


맑은 느낌을 살린 화려하고 밝은 음색

음색이 밝습니다. 개인마다 약간씩 다르게 느껴지는 음색이 아니라 '진짜 밝은 음색'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거부감을 주는 밝은 음색이 아니군요. 맑은 느낌을 강하게 살리되 온통 푸르딩딩하게 색을 입히지는 않았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아, 이거 일본 헤드폰이구나...'하고 짐작하게 되는 화려하고 밝은 음색입니다. 물에 비교한다면 천연수도 아니고 사이다도 아닙니다. 맑은 물에 이산화탄소를 녹여서 깨끗함과 청량감을 모두 지닌 탄산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밝은 음색의 원인은 아마도 낮은 고음역과 높은 고음역 일부를 모두 강조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0 kHz 주변의 자극감 있는 고음과 3~5 kHz 주변의 약간 거친 고음(또는 중음)까지 의도적으로 강조한 느낌이 듭니다. 음반 중에 10 kHz 이상의 영역까지 폭넓게 재생되는 곡이 많다면 이 헤드폰의 고음 강조가 어떤 것인지 체험하실 수 있겠습니다. 선이 굵고 또렷하게 강조된 고음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하기에는 상당히 강렬한 고음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판도라 HOPE VI의 구매 여부를 결정할 가장 큰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밝은 음색과 더불어 간헐적으로 자극감을 주는 고음을 싫어한다면 다른 헤드폰을 선택하시는 게 나을 듯 합니다.


금속 하우징 특유의 고음 잔향, 여성 보컬이 더욱 화려해진다

맑고도 밝은 고음역에 독특한 잔향이 추가됩니다. 이것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하우징이 만든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제품은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후면에 두께가 1.5mm나 되는 알루미늄 판을 넣어뒀습니다. 어떻게든 고음역 일부가 금속판을 두들긴 다음 청자의 귓바퀴로 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의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금속 하우징은 저음의 울림을 깨끗하게 다듬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고음에 특이한 잔향을 넣는 역할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런 잔향을 쇳소리라고 하겠으나, 이 헤드폰의 고음에서 나오는 잔향은 거슬리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선명하게 강조된 고음 특성과 맞물려 훌륭한 장점을 하나 갖게 되더군요. 바로 여성 보컬의 튜닝 효과입니다. 여성 보컬 중에서도 고음을 많이 사용하는 목소리에서 그 화려함이 강해집니다. 드럼의 심벌즈 소리에서는 치찰음 강조처럼 들리는데, 여성의 목소리에서는 '은쟁반 위의 옥구슬' 같은 소리 다듬기가 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헤븐 C 이어폰에서 분명히 체험했습니다. 처음으로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 제품 중에서 공통점을 가진 경우를 발견한 셈이군요.

묵직한 타격과 깔끔한 마무리를 지닌 저음

저음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완성도'라는 단어의 선정은 저음의 응답 속도와 타격감, 해상도를 종합한 것입니다. 그냥 생각해보건대 이 헤드폰에서 BA 유닛을 제외했어도 상당히 좋은 소리가 나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고음의 개성이 사라지겠지만 그만큼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성능과 튜닝이 좋다는 뜻입니다. 저음은 약간 부스트가 되어 있는데 100 Hz와 그 아래를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느낌입니다. 즉, 배경적으로 깔아주는 저음에 가깝습니다. 또한 울림이 상당히 탄력적이며 빠르게 이어집니다. 저음의 울림에 의한 잔재가 거의 남지 않아서 깨끗하고 담백한 인상을 주는군요. 묵직하고 깊은 울림의 타격을 내지만 타격의 끝이 명확합니다.


적당히 강조된 중음역

이 헤드폰은 음색을 밝고 세련된 쪽으로 기울여놓았지만 사운드 밸런스는 어떤 음악이든 즐길 수 있게 잘 맞춰져 있습니다. 플랫이 아니라 고음, 중음, 저음 모두 특정 영역이 강조된 타입에 속합니다. 이것은 중음역의 일부도 잘 강조되어 있다는 뜻이 됩니다. 저음보다는 덜 강조되지만 저음의 울림에 가려지지 않고 중음역이 앞으로 잘 드러납니다. 특성 상 여성 보컬보다는 남성 보컬이 더 가깝게 들리는데요... 여성 보컬은 화려한 음색으로 아름답게 꾸며주며, 남성 보컬은 밀도가 높고 가까운 중음역 묘사로 양감을 더해주는 식입니다. 물론 현악기의 선 울림을 굵게 덧입혀주는 특성도 있습니다.


냉정하고 현대적인 소리로 세련미를 추구한다

밝고도 선명한 고음과 빠른 응답의 탄탄한 저음이 더해지니 상당히 냉정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의 소리가 됩니다. 재즈 감상을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퓨전 재즈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렉트로니카의 감상에서도 오밀조밀한 전자음이 정교하게 재생되며 짧고 타이트한 울림의 저음이 깊게 들려서 더욱 세련된 인상을 주었습니다. 뉴에이지 연주곡을 들을 때에도 이런 세련미가 큰 장점이 될 것입니다. 맑게 울리는 현악기의 음과 깨끗하게 울리는 저음 악기가 어우러지니 더욱 섬세하게 들리는 면이 있습니다. 클래식 악곡을 들어도 이 헤드폰의 세련된 인상이 좋은 느낌을 주지만 경우에 따라 냉정함이 어울리지 않는 곡도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일단 비틀즈의 음악을 이 헤드폰으로 듣는 것은 다소 어색할 수 있겠습니다. 클래식 악곡도 하프치코드가 들어간 바로크풍이 좋고, 감성에 크게 호소하는 첼로 콘체르토 곡은 너무 냉정하게 느껴졌습니다.

*Final Audio Design Pandora HOPE VI 사운드의 주요 특성은?
해상도 : 높음.
타격감 : 깊고 묵직하며 끝이 단단한 저음 타격.
공간감 : 밀폐형 헤드폰으로는 매우 넓은 편.
치찰음 : 간헐적으로 확실하게 강조됨.
자연스러움 : 냉정한 면이 있으나 음의 연결은 자연스러움.
고음역 : 밝고 화려하게 강조된 고음. 금속 하우징의 잔향 존재.
중음역 : 높은 밀도와 가까운 위치를 보이는 중음.
저음역 : 양이 많으며 초저음 중심으로 강조됨. 빠르고 명확한 느낌이 훌륭한 저음.

지민국(luric@buy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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