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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뷰
헤드폰 오디오에서 앰프 비교 청취로 얻은 교훈
헤드폰을 쓰는데 소스 기기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까?

2016년 12월 30일


국내 헤드폰 시장을 기준으로 볼 때, 헤드폰으로 음악 감상을 시작한 사람과 스피커로 시작한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헤드폰(이어폰)으로 음악 감상을 시작한 쪽에 속하며 ‘헤드폰을 좋은 것으로 바꾸면’ 전체적인 음악 감상 경험이 향상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라우드 스피커를 사용해서 하이파이 오디오를 운용해온 사람들은 시스템에서 스피커만 바꾼다고 다 좋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그들은 ‘소스의 중요성’을 피부로 체감해왔으며 하이파이 오디오가 여러 컴포넌트의 결합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하이파이 오디오를 장만할 때는 직접 정보 탐색을 하고 소리를 들어보거나 오디오샵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습니다. 자신이 주로 듣는 음악과 추구하는 소리 성향, 그리고 물리적인 생활 환경(오디오를 설치할 공간과 전력 여건 등을 조사) 등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서 재생기, 앰프, 파워 서플라이, 라우드 스피커, 케이블 등을 '조합'하는 것입니다. 하이파이 오디오는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아서, 최고의 연주자들만 모아둔다고 해서 최고의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도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훌륭한 앙상블을 이룰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팀 플레이'에 가깝습니다.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음대 안의 비교적 부족한(?) 학생들만 모아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지휘자의 인간적 접근으로 그들을 융합하여 감동적 연주를 해내는 장면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오디오 애호가 사이에서는 거의 일반적인 것이지만 헤드폰 오디오 쪽에서는 썩 익숙한 풍경이 아닙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헤드폰 오디오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재생기, 앰프 쪽에 높은 비용을 투자하거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는 노력이 드문 편입니다. 수백만원대의 헤드폰을 밸런스 케이블로 모노블록 헤드폰 앰프에 연결하고, 소스 기기로 수천만원대 CD 플레이어를 갖춘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을 국내에서 본 적이 있는지요? 설치와 사용 방법이 까다로운 레코드 플레이어(LP 재생)에 포노 앰프와 헤드폰 앰프를 구성하고 헤드폰을 연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실로 극소수의 헤드폰 애호가만이 이런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소스 쪽은 아무런 특징이 없어야 하며 헤드폰 쪽에서만 특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실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이엔드급 헤드폰 오디오를 운용해보면 소스 쪽에서 만드는 차이가 무척 큽니다. 이 영역부터는 오디오 제작자의 귀와 마음으로 판단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시작은 전자 부품의 과학인데, 최종적으로 보다 깨끗한 소리 또는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오디오 제조사마다 다르게 나옵니다. 스피커, 헤드폰 분야에서도 과학 기술이 중요하지만 소스 기기 분야는 그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단, 소스 기기의 소리를 과학 기술 혼자서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소리라는 물리적 현상에 음악이라는 예술적 사상을 혼합할 수 있어야 오디오 애호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의 : 중급 이하 구성에서는 소스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PC에 USB DAC 겸 헤드폰 앰프 한 대만 연결해서 사용 중이며 돈을 더 쓸 생각이 없다면 헤드폰에 비용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포칼(Focal)에서 헤드폰 유토피아(Utopia)와 일리어(Elear)를 내놓은 것은 예전에 저의 감상문에서도 언급했듯이 헤드폰 시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스테레오 채널의 사운드 모니터링이 아니라, 스테레오 채널이되 라우드 스피커처럼 소리의 공간을 중시하는 헤드폰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욱 높은 성능의 드라이버 덕분에 라우드 스피커의 공간감과 소리의 높은 해상도를 모두 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거 공간 문제 때문에 라우드 스피커를 쓸 수 없게 된 오디오 애호가들이, 최적화된 오디오 경험을 위해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의 전반적 조율을 해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헤드폰의 고급화로 그치지 않고, 헤드폰 오디오의 종합적 퍼포먼스를 끌어올리기 위해 헤드폰 외의 것들을 생각합니다.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해도 되겠습니다.

“라우드 스피커의 하이파이 오디오를 구성하듯이 헤드폰의 하이파이 오디오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오디오샵에서 컨설팅을 받을 때 방 안에 다양한 앰프와 스피커를 모아놓고 이렇게 저렇게 연결해보면서 소리 차이를 느껴보는 것처럼, 헤드폰 오디오에서도 몇 가지 소스 기기를 비교 청취해본다면 어떨까요. 동일한 소스에 여러 가지 헤드폰을 연결해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번에는 유토피아, 일리어를 기준으로 하여 다수의 소스 기기를 연결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의 목표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사용할 헤드폰 시스템이나 이미 하이파이 오디오가 있는데 보조용으로 갖추는 헤드폰 시스템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이파이 오디오를 대신할 수준’으로서 몇 가지 조합을 해보고 비교 청취하여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저의 경제력이 충분하다면 직접 고가의 소스 기기들을 구입해서 룸에 갖춰 두고 오랫동안 들어보면서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림도 없군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고가의 장비를 수입하는 회사에서 저에게 수입 제품들을 직접 사용해보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줬다는 것입니다.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의 가능성을 발견한 수입사에서 상당히 좋은 여건의 청음실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다수의 이어폰, 헤드폰들을 전시해두고 잠깐씩 들어보는 청음실이 아니라, 현재는 총 네 가지의 하이엔드급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을 구성해둔 상태에서 좌석 4개만 갖추고 있습니다.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서, 아주 조용하게 밀폐된 공간 속에서 청취해볼 수 있습니다. 직접 찍은 청음실 사진을 몇 장 올려둡니다.






“오렌더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N10과 골드문트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를 조합한 시스템입니다. 성능과 성향에 맞는 헤드폰으로는 유토피아를 권하고 있습니다.”

“나그라의 CD 플레이어, 파워 서플라이, HD DAC 세트입니다. 유토피아, 일리어 모두 잘 맞는 편이지만 역시 유토피아가 잘 어울리는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프로젝트 오디오의 다기능 재생기와 헤드폰 앰프, DAC, 파워 서플라이를 조합한 시스템입니다. 이 구성에는 다양한 헤드폰을 매치해볼 수 있으니 사용 중인 헤드폰을 가져오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프로젝트 오디오의 진공관 포노 앰프와 레코드 플레이어(턴테이블), 헤드폰 앰프로 구성된 아날로그 시스템입니다. LP 오디오를 헤드폰으로 듣는 것도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니 꼭 해보시길 권합니다.”



현재 청음실 안에 있는 4개의 시스템은 가격대가 900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도달하므로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싶은 분들에게 적합하겠습니다. 방 안의 모든 기기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지니고 있으며 전원 환경과 케이블 등의 세팅이 잘 되어 있어서 모바일 헤드폰 포칼 리슨(Listen)으로 들어도 만족스러울 정도입니다. 나중에 별도로 다루겠지만 라우드 스피커와 마찬가지로 헤드폰 오디오에서도 이러한 전원부, 케이블 등의 주변 정리가 소리 품질에 영향을 줍니다. 수입사의 청음실은 이 요건을 이미 클리어한 상태이므로 여기에 마련된 제품을 그대로 구입해서 집에 설치했을 때 소리 느낌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라우드 스피커 시스템을 오디오샵에서 구입하고 자신의 거실에 설치했을 때 소리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은 결과는 피할 수 있지요. (헤드폰이므로 룸 이펙트가 거의 없습니다. 주로 오픈형 헤드폰을 사용하니 방음만 잘 챙겨주시면 됩니다.) 헤드폰 오디오에 1천만원 이상 들이는 분이라면 이런 점을 잘 아실 터이니 일단 줄입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 중에서 ‘헤드폰 앰프’의 비교를 해보려고 합니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CD 플레이어 같은 재생기의 역할도 중요하고, PC 기반의 오디오라면 USB 케이블도 매우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헤드폰의 소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소스 기기로써 헤드폰 앰프를 비교 청취해보는 것입니다. 더 많은 제품들을 갖춰서 비교하고 싶지만 이번에는 청음실을 빌려준 회사에서 수입하는 제품들을 가격대에 따라 비교해보겠습니다. 글은 제 마음대로 쓰지만 제품 선택은 제 마음대로가 아닌 점, 양해를 바랍니다.

이번 비교 청취에서 기준점으로 사용하는 재생기는 나그라 MPS(파워 서플라이)와 연결된 나그라 CD 플레이어입니다. 나그라 소스 기기에서 MPS는 필수 품목 같은 것이니 두 제품을 한 덩어리로 보셔도 됩니다.


오늘의 비교 대상은

1. 프로젝트 오디오 헤드박스 DS (79만원)
2. 프로젝트 오디오 헤드박스 RS (180만원)
3. 나그라 HD DAC (헤드폰 출력 사용, 3,500만원)
4. 골드문트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 (1,270만원)

가 되겠습니다.


헤드폰 앰프가 아닌 나그라 HD DAC를 헤드폰 전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헤드폰 출력의 품질이 워낙 훌륭해서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와 같은 선에 두고 비교하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는 아날로그 입력을 받을 때에도 내부의 디지털 프로세싱을 거쳐서 소리를 만들기 때문에 나그라 HD DAC와 비교하기에 좋습니다. 단,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는 헤드폰 구동에 최적화되어 있고 나그라 HD DAC는 헤드폰 출력을 보조 기능으로 제공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나그라 CDP와 헤드박스 DS, 헤드박스 RS,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를 연결할 때는 ‘체르노프 Mk II IC’ 인터커넥터 케이블을 사용했습니다. 카 오디오를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걸 끼웠더니 내 오디오가 다시 태어났어요'라고 평가 받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나그라 CDP와 HD DAC는 독자 규격(Lemo 커넥터)의 케이블로 연결됩니다.

그 다음에는 포칼 일리어로 4개의 앰프를 비교 청취합니다. 그 후 포칼 유토피아로 4개의 앰프를 비교 청취했습니다. 시작부터 차이가 확 느껴지는데요. 유토피아로 비교 청취할 때 각 앰프의 차이점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만, 보다 자세하게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1. 하이엔드 헤드폰일수록 시스템의 특성을 잘 보여주게 됩니다.
: 유토피아가 일리어보다 더욱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유토피아를 ‘헤드박스 DS’로 들으면 소리의 입자가 거칠고, ‘헤드박스 RS’로 들으면 중저음이 포근해지는 반면 고음이 깎여나갑니다. 그런데 같은 조건에서 일리어로 감상하면 이런 품질 차이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휴대용 기기에 쓰도록 만들어진 포칼 리슨도 한 번 연결해봤는데 헤드박스 DS, 헤드박스 RS, 나그라 HD DAC,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 모두에서 대체로 듣기 편한 소리가 들립니다. 어디에 연결해도 딱히 변화가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편하더군요.


2. 좋은 소스를 넣으면 소리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 감상하는 사람의 취향 문제를 떠나서, 소리의 해상도, 배경의 침묵, 뚜렷한 사운드 이미지, 생생한 공간감 등의 요소는 헤드폰과 함께 소스 품질이 향상되어야만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소스가 썩 좋지 못하다면 헤드폰을 550만원짜리로 바꿔도 감흥이 없거나 오히려 자신의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에 숨겨져 있던 결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저도 백여편의 헤드폰 리뷰를 진행하면서 몇 차례 겪었던 점입니다. 일반적인 독자 여러분과 비슷한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헤드폰 앰프나 DAC를 고급형으로 장만하지 않고 있는데, 하이파이맨(HiFiMAN) HE-6를 접했을 때는 제가 쓰던 인터커넥터 케이블을 교체하게 됐으며, 어비스(Abyss) AB-1266과 만났을 때는 헤드폰 앰프를 새로 구입해야 했습니다. 제가 사용하던 소스 기기 품질보다 헤드폰의 성능이 훨씬 높아서 그나마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소스를 업그레이드했던 것입니다.


3. 즐겨 듣는 음악의 종류도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의 방향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 오디오 애호가들이 모두 대편성 오케스트라 연주의 클래식 악곡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으로 국악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레코딩이 잘 된 디지털 음반도 좋지만 LP 음반을 구입한 후 레코드 플레이어, 진공관 포노 앰프, 진공관 헤드폰 앰프를 써서 아날로그 감상으로 가는 편이 훨씬 감성적일 것입니다. 또, 일렉트로닉 음악을 매우 깨끗하게 듣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디지털 기반의 헤드폰 오디오를 갖추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모니터링 헤드폰을 장만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일렉트로니카에서 감흥을 주는 것은 빠른 응답 속도와 높은 해상도이며 상대적으로 음악의 공간감이 아주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락 음악을 기똥차게(!) 듣고 싶다면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되 헤드폰은 플래너 마그네틱(평판형 자석) 드라이버가 아닌 다이내믹 드라이버 제품으로 골라보시길 권합니다. 진공관 앰프는 트랜지스터 앰프보다 중저음의 타격이 둔탁하면서도 힘차며 밝은 음색을 지양하는 경우가 많아서 거친 분위기의 락 음악에 잘 맞습니다.


이번 비교 청취에서 진공관이 사용된 하이브리드 앰프 ‘헤드박스 RS’는 그 성능이 낮은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만약 유저가 국악 음반이나 락을 즐겨 듣는다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헤드박스 RS의 헤드폰으로 유토피아를 선택한다면, 유토피아의 초고해상도 드라이버가 락 음반의 거친 질감과 헤드박스 RS의 고음 손실을 드러내어서 오히려 음악 감상을 방해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헤드박스 RS에는 일리어가 더욱 좋은 짝이 됩니다.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오면 헤드폰, 앰프, 재생기 등의 어울림이 음악 장르에게 매우 중요한 팩터로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여기부터는 이번 비교 청취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 나열해봅니다. 사실 나그라 HD DAC만 빼고 제품들의 후기를 모두 작성해봤기 때문에 각 앰프의 소리 특징을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본연의 음색을 지닌 유토피아, 일리어로 비교 청취하는 것이니 앰프 고유의 소리 특성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참고 : 앰프 고유의 소리 특성을 찾으려면 음색 특징이 없는 헤드폰과 음색 특징이 있는 헤드폰 다수를 동원해서 비교 청취하고 평균을 내어야 합니다. 제 방법론은 그렇습니다.)


포칼 일리어는 확실히 올라운드 타입의 헤드폰 같습니다. 4대의 앰프에서 모두 일관적인 음색을 들려주며, 포근한 중저음과 알맞게 선명한 고음을 유지합니다. 프로젝트 오디오 헤드박스 RS(진공관, 트랜지스터 하이브리드 앰프)도 출력 임피던스를 5옴으로 맞춘 상태에서 일리어와 함께 들으면 늘어짐 없이 꽤 깔끔한 감상이 되었습니다. 이번 비교에서 가장 저렴한 헤드박스 DS에서도 일리어는 여전히 듣기 좋고 편안한 소리의 헤드폰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포칼 유토피아는 헤드박스 DS를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골드문트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로 듣다가 헤드박스 DS로 바꾸는 순간 소리의 밀도가 낮아지며 질감이 거칠어지는 것입니다. 음색도 짙은 푸른색이 추가되었습니다. CD 음반과 트랜지스터 앰프의 명확한 끝맺음, 샤프한 인상이 있어서 적당한 감상은 할 수 있으나, 유토피아의 초고음 및 초저음 재생 능력은 베일에 가려진 느낌이 듭니다. 또, 유토피아를 헤드박스 RS와 연결하면 응답 속도의 느려짐이 확연해집니다. 이 소리도 편안하고 나긋한 느낌이 있어서 좋지만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 나그라 HD DAC에 연결했을 때와 달리 현장의 공기감이 거의 없습니다. 기운으로 감지하게 되는 초고음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유토피아를 사용해서 텔로스 헤드폰 앰프 2와 나그라 HD DAC의 헤드폰 출력을 비교 청취하는 경험도 흥미롭습니다. 텔로스 헤드폰 앰프 2가 소리 선이 더 굵고 짙은 인상을 주며 고음이 시원하게 들리지만, 음의 자연스러움과 고.중.저음의 매끄러운 연결은 오히려 나그라 HD DAC의 헤드폰 출력이 더 좋게 들리더군요. 제 생각에, 최고의 결과를 얻겠다면 PC에 곧바로 텔로스 헤드폰 앰프 2를 연결하기보다는 중간에 나그라 HD DAC를 배치하고 텔로스 헤드폰 앰프 2를 연결하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도 예산을 여유롭게 잡았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더 많은 수의 컴포넌트로 분리하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소스 기기를 고급화한다면 하이엔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때는 기기 간 상성도 검토해봐야 해서 꽤 어려워지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이것은 여담으로, 헤드폰 앰프 못지 않게 CD 플레이어의 차이도 얼마나 큰지 알게 됐습니다. 저는 예전에 골드문트 텔로스 헤드폰 앰프 II를 골드문트 레퍼런스 블루 MK 3와 연결해서 감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동일한 구성으로 나그라 CD 플레이어를 연결해서 들어본 것입니다. 무려 1,890만원의 나그라 CD 플레이어이지만 골드문트 레퍼런스 블루 MK3보다 해상도가 조금 낮고 음이 건조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2억원 정도의 엄청난 가격 차이가 있지만, 외장 DAC나 헤드폰 앰프의 소스가 되는 CD 플레이어,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소리 품질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혹시 나그라 CD 플레이어를 사용 중이며 소리에 충분히 만족 중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 입장에서 ‘오디오의 세계에는 다음 단계가 꼭 있다’는 현실을 알았을 뿐입니다.



*결론 : 하이엔드 헤드폰 오디오에서 소스의 영향은 너무나도 크다

포칼 유토피아 같은 고급형 헤드폰들도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DAP에 연결하면 '일반 기준'에서 좋은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오디오 애호가의 기준'에서 생각한다면 거치형의 DAC와 헤드폰 앰프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며, '라우드 스피커를 대체한다'는 목적으로 운용한다면 CDP와 인터커넥터, USB 케이블까지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현재 기준으로 최고의 헤드폰 오디오를 구축한다'는 것이 목표라면 하이파이 오디오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소스를 갖춰야 합니다. 이것을 반대 방향으로 생각하면 유토피아가 소스 쪽의 단점을 드러내어서 오히려 나쁜 결과를 볼 수 있으니 소스 기기의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살펴봅시다. 오늘 비교 청취해본 4대의 앰프 모두 유토피아, 일리어와 조합했을 때 기본적으로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토피아가 온몸으로 거부한다고 평가했던 헤드박스 DS도 10분 이상 들어보면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텔로스 헤드폰 앰프 2와 비교 청취해봐도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유저의 가치 기준입니다. 또는 '기대치'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현재까지 주장해온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결론이 나옵니다. ‘어떤 구성의 시스템이든 그 소리가 내 마음에 든다면 문제없다’ - 바로 이 생각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헤드폰 단독의 선택이 아닌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의 선택'이 된다면 이 단계부터는 경험과 학습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모바일 헤드폰이야 매장에 가서 직접 비교 청취해볼 수 있지만(자신의 스마트폰이나 DAP에 연결해서), 헤드폰용 소스 기기는 비교 청취할 여건을 개인이 만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수입사에서 저에게 청음실을 빌려준 이유를 이제 알겠군요.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면 소스 기기와 케이블 등을 충분히 조합해본 사람의 경험을 흡수해야 할 것입니다. 자금과 시간이 충분하다면 직접 다수의 소스 기기를 구입해서 비교 청취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터이니 '헤드파이 컨설팅'이 필요하겠습니다.

지민국(luric@buy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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